AM 02 : 01
백업/河原崎 結人2021. 4. 7. 02:19
카와리사키 유이토 → 후토리 후유엔
*반복재생 설정 후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오래 파고든 습관을 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람은 대부분 익숙한 일을 하려고 하고, 변화보단 유지를 택한다. 그러니 가령 유이토가 가볍게 사람을 대하고, 노을을 보며 호흡을 더듬고, 잠들기 전엔 빛바랜 야광별을 쳐다보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장 변하고 싶었던 건 단연 본인이었다. 후유엔과의 반복되는 통화 또한, 숨 막힌 삶에서도 무엇이라도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고 붙잡던 것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초봄의 서늘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쳐 지나가면,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 채로 달을 보며 한 차례의 숨을 토해내었다. 유이토는 이윽고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그에게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 남아있기에 문을 열기까지의 망설임은 단 한 번뿐이었다. 유이토가 늦은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바라본 시계는 10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2020.03.26.
[PM 10:23 수신 통화 (02:34:19)]
여보세요~ 후유엔, 뭐해? 또 디저트야? 되게 좋아하는구나-. 다른 건 안 하고 있었어? 흐음~, 새삼스럽지만 너 달달한 걸 좋아하는 거에 비해 많이 안 찌는 편인 거 같아. 만약 먹는 만큼 찌는 편이었어도 계속 먹었을 거 같아? ···이정도 조건이어야 운동을 한다니···. ···자전거? 최근에 배우고 있는 거 같던데 누가 가르쳐주고 있는 거야? 하하, 히데오는 튼튼하니까 세 번까지는 부딪혀도 멀쩡할 걸~? 기왕 좋은 선생님이 가르쳐줄 때 잘 배워놔. 그래야 나중에 나랑 놀러 가서 자전거 타지··· ··· ···
2020.04.22.
[PM 11:32 발신 통화 (02:58:33)
여보세요···? 정말 네가 먼저 건 거야···? 우와··· 난 전혀 상상도 못해봤는 걸. 이런 것도 좋네. 전화 버튼 누르기까지 내 생각 얼마나 했어? 뭐? 아하하하! 2시간이나? 솔직히 말해봐, 지금도 엄청 긴장했지? 원래 먼저 연락 자주 하는 편이야? 그래~? 그럼 무슨 할 얘기 있어서 전화한 건가? ···뭐야, 정말 그냥 전화해준 거였구나. 내 목소리가 조금 감미롭긴 하지. 그래도 마침 잘 됐어. 나도 네 목소리가 듣고 싶던 참이거든. 지금 뭐 하고 있어? 너무 일찍 누운 거 아냐? 나 기분 좋아서 오늘 안 끊어줄 건데··· ··· ···
2020.07.01.
[PM 10:32 수신 통화 (03:34:42)]
여보세요, 후유엔. 자고 있었어? 목소리가 좀 가라앉은 거 같은데-. 어제? 왜? 무슨 일 있었어? 아하, 하긴 통화하느라 공부를 많이 못 하긴 했지. 그나저나 의외다. 공부도 하는구나. 나는 네가 그냥 수업을 잘 듣고 잘하는 줄 알았지. 내 앞에선 공부하는 모습 보여준 적 없잖아. ···혹시 지금 내가 너 공부하는 거 방해한 건가. 허~? 너무 단칼에 대답하는 거 아니야? 좀 봐줘, 좋아서 그런 거니까. 있지, 내일 마지막 시험이니까 끝나고 놀래? 시간 괜찮아? 가보고 싶은 가게 있으면 가봐도 좋고. 와! 그럼 내일 마치고 너희 반 갈게. 선약 있을까 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그럴까? 으음.. 사실 나도 너랑 가고 싶어서 봐둔 곳 있는데. 정말? 다음에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둘 다 가는 걸로 하자. 늦으면 또 너희 집에서 자고 갈까··· ··· ···
2020.10.12.
[PM 10:27 발신 통화 (03:48:11)]
···그랬구나. 근데 집에 누구 왔어~? 다른 사람 목소리 들리는데-. 아, 그래도 통화해도 괜찮은 거야? 그래? 집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네가 말해주지 않으면 내가 접하는 건 신문이 다 인 거 알잖아. 그렇다면 다행인데···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해줘, 후유엔. 내가 네 생각 많이 하는 거 알잖아. 알았어. 피아노? 아예 시작부터? 이번에도 혹시 다른 친구한테 배우는 거야?··· ··· ···
2020.11.20.
[PM 10:28 수신 통화 (03:51:07)]
여보세요~ ······후유엔. 울었어···? 왜? 뭐 때문에? 무슨 일이야? 혹시 다친 건 아니지? 지금 나갈까? 영화? 무슨 영화? 아~, 이터널 선샤인 재밌지. 근데 그거 멜로 영화잖아. 로맨스 장르는 잘 안 보지 않았어~? 그렇구나. 재밌었어? 나 그 영화 3번이나 봤거든. 신기하잖아, 결국엔 모든 것을 잊어도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는 점이 이해는 안 되지만 부럽고 좋아서 계속 다시 봤었어. 평소에도 영화 보면서 잘 우는 편이야? 일부러 눈물 나는 것만 찾아보는 편? 아하하, 농담이야. 뭐, 울고 나면 후련하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말 나온 김에 우리 수요일에 영화 보러 갈래? 지난번에 영화 본 곳으로 갈까. 기왕이면 가까운 곳이 좋잖아. 수요일에 개봉한다는 로맨스 영화 알아? 응, 기왕이면 개봉일이 기분 좋잖아. ···보고 너 지난번에 좋아하던 케이크 집도 가자. 그럼 돌아가는 길에 야식도 사 오고··· ··· ···
2020.12.28.
[PM 11:21 발신 통화 (03:04:51)]
··· ··· ···목소리가 좀 떨리는 거 같은데 감기야? 이 한 겨울밤에 환기라니··· 필요하긴 하지만 조심해. 그··· 너희 집 파파라치 같은 것도 많이 붙었었잖아. 너도 참 고생이다. 다들 남의 집 사정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거래? ···지금 뭐 마시고 있어? 응, 그럴 거 같아. 네가 고른 거라면 당연하지. 내년이 되기 전에 마셔볼 수 있으면 좋겠네. 문은 슬슬 닫는 게 어때? 좋아. 그런데 너무 늦게 건 거 아냐~? 벌써 12시야. 조금 더 일찍 전화하지. 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진짜야. 오늘은 일이 있어서 먼저 연락 못 한 것뿐이라니까? 아니, 마침 딱 끝났으니까 완벽한 타이밍이었어. 그리고 일이 있더라도 네 전화라면 받아야지. 안 받으면 혼자 또 의기소침해하고 있을 게 뻔하잖아. 내가 너를 아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 ···
2021.03.24. 수요일
[PM 10:32 수신 통화 (03:29:55)]
아하하, 즐거웠나 보네. 그래? 시라유키는 항상 웃는 얼굴로 속속들이 꿰고 있단 말이지···. 다음에는 나랑도 가자. 후유엔, 지금 졸리지. 목소리가 엄청 늘어지는 걸. 오늘은 이만 끊고 잠에 드는 게 어때? 흠, 내일 볼 텐데도? 내가 졸업하고 나면 나랑 연 끊을 거야···? 그런 건 아니잖아. 앞으로도 연락할 거고, 만날 거면서 너무 아쉬워하지 마. 난 네가 나랑 같이 졸업하길 바라긴 했어. 하지만 늦은 거 알지? 그리고 2학년에 좋은 친구들도 많잖아. ···너무 슬퍼하지 말자. 영원한 이별은 아니잖아··· ··· ··· ··· ··· ··· ··· ··· ··· 후유엔~ 자는 거야? 통화 상대를 두고 자버리면 서운한데······. ···잘 자, 내일 보자.
유이토는 침대에 몸을 뉘이고 통화가 끊긴 핸드폰 화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다가 갤러리를 들어갔다. 골든벨을 한 날, 작은 종이에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찾던 날, 비가 와서 쫄딱 젖은 친구들을 말려주던 날, 다 함께 마츠리를 간 날, 스티커를 주고받으며 소원지를 쓰던 날, 츠바페 속에서 학교가 떠나가라 웃던 날까지. 그 사진들 속의 후유엔도, 유이토도, 다른 친구들도. 항상 즐거워 보여서 내일이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온점을 찍게 된다는 사실이 사뭇 아쉽게 느껴져 왔다. 가벼운 인간관계 속 우연히 쌓여간 무게는 버겁기보단 유이토를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로 이곳저곳을 부유하며 세상을 삐뚜름히 보던 자신을 땅에 붙들어준 이 관계들에 유이토는 애정을 느꼈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면, 수없이 세던 천장 무늬들 그리고 그 옆에 작게 붙여진 야광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어릴 적 남몰래 붙여둔, 홀로 잠들 때마다 외로움을 달래던 그의 유일한 빛이었다. 더이상 야광별은 빛을 밝히지 않았지만 자라버린 유이토의 마음에는 다른 것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후토리 후유엔', 그가 유이토에게 새로 자리 잡은 별이었다. 떼지 못한 별을 잠들기 전까지 바라보던 습관은 또 다른 습관으로 인해 사라진다. 유이토는 이제 바래버린 것을 좇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그를 떠올리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오늘이 지나버리면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끝이 나겠지만, 외롭지 않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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